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타구치 렌야 (문단 편집) == 전쟁 범죄 의혹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940054|알렉산드라 야전병원에서의 환자 학살 논란이 있다.]] 이 사건은 1942년 4월 무타구치가 말레이 방면을 공략하던 18사단장이었을 때 벌어진 일이다. 18사단은 영국군의 야전병원을 점령하고, 소수의 포로만 남기고 환자 및 스태프를 학살했는데 다음날 현장을 방문한 무타구치가 생존한 영국군 고위장교 포로에게 사과했다는 것이다. 직접 학살 명령을 내리지 않았어도 이런 학살이 벌어지면 감독 부실의 책임을 물어 처형된 예가 많다. 당시 무타구치의 상관이었던 [[야마시타 도모유키|야마시타]] 대장이 나중에 부하들을 다스리지 못한 죄[* 다만 야마시타는 이 사건이 아니라 [[필리핀]] [[마닐라]]의 [[마닐라 대학살|학살극]]이 문제가 되어 처형되었다. 이때 사망한 필리핀인들이 수만 명에 이르기 때문에 누구든 책임은 져야 했다.]로 전범이 되어 처형된 것과는 달리, 무타구치의 경우에는 당시 영국군이 알렉산드라 야전병원을 방어 거점으로 삼아 일본군에 저항했던 까닭에 기소하기에 불리하다는 정치적 판단과 함께 증인을 찾기 위해 무타구치의 사진을 영국에 보냈으나 1년이 넘도록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던 점이 고려되어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당시 생존자 증언 중에는 무타구치가 학살극 다음 날 직접 병원을 방문하여 전쟁범죄 현장을 확인하고 주모자들을 총살시킨 뒤 돌아갔다는 얘기가 있는데, 무타구치 본인은 학살극 일체를 몰랐다고 주장했다.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학살극 후에 보고를 받고 주동자들을 처벌했으나, 본인에게 가해질 처벌이 두려워서 아예 몰랐다고 주장한 것이 된다. 하지만 학살을 몰랐다는 무타구치의 주장은 설득력이 낮다. 이 반응은 학살 의혹이 있는 대다수의 추축국 장병들이 전후에 자신들의 혐의에 대해 보인 반응과 같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